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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Book/독서록

📙 싯다르타 - 헤르만 헤세(24.6)

by 정람지 2024. 10. 30.

오래 책을 읽지 않았다..

흠,,

웹소설은 엄청 많이 보긴 했지만

그것은 문학이 아니라 유희,,

유리알 유희?

싯다르타를 드디어 완독하고

독서 버킷리스트 헤세 카테고리를 정복했다

유리알 유희가 떠오른 김에 추가해야겠다

 

𝙱𝙾𝙾𝙺 - 𝚋𝚞𝚌𝚔𝚎𝚝 𝚕𝚒𝚜𝚝 | Notion

성인 된 이후 기준

skitter-variraptor-bf5.notion.site


📙 줄거리

  • 싯다르타 : 주인공
  • 고빈다: 싯다르타의 친구
  • 카마라: 싯다르타의 애인
  • 카미스바미: 싯다르타를 고용한 부자 상인
  • 바스데바: 강을 지주로 삼는 뱃사공

카스트 제도의 1계급, 성직자의 아들인 싯다르타는 깨달음을 얻기 위해 아버지의 만류를 뿌리치고 친구인 고빈다와 함께 사마나로 출가.

고행 중 세존 고타마(붓다)를 만났지만 부처의 가르침이 진정한 깨달음의 길을 줄 수 없으며, 모든 이들은 각자가 깨달음을 찾아야 한다는 것을 느끼고, 친구 고빈다와 헤어짐.

고행 중 카말라와 사랑에 빠져 마을에 정착하게 됨.

카말라에게서는 사랑하는 방법과 그 즐거움을 배우고,

카마스와미에게서는 돈에 대해 배움.

사마나로서의 신념이 점점 흐려지며 세속에 찌든 자신의 모습에 실망하고 강에 몸을 던졌으나 깨달음을 얻고 다시 순례를 시작.

예전 자신을 태워  준 뱃사공 바주데바와 같이 일하게 됨.

옛 애인 카말라가 독사에 물려 죽자, 카마라와 자신과의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을 맡아서 키우며 사랑에 대한 깨달음을 얻음.

강에서 옴의 깨달음을 얻음.

바스데바와 헤어진 그는 고빈다를 우연히 만나 그에게 자신이 깨달은 것을 가르쳐주고, 고빈다는 옛 친구 싯다르타에게 경의를 표함.


📙 체크문장

우리는 맴돌고 있는 게 아니라 위로 올라가고 있어. 그 원은 나선형이야. 우리는 벌써 많은 단계를 올라왔어.

 

나는 아무것도 배울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기 위해서 오랜 시간을 허비해 왔고, 아직도 그것을 끝내지 못하고 있네. 우리가 '배움'이라고 부르는 그런 일은 실제로 존재하지 않네. 오! 나의 친구! 오직 깨달음이 존재할 뿐이지.

다양한 인생 경험을 통한 성장

하지만 지식을 열망하는 자여, 풀숲처럼 무성한 의견들을 주의하고 언쟁을 주의하십시오. 이런저런 의견들은 조금도 중요하지 않습니다. 그것들은 아름다울 수도, 추할 수도 있으며, 현명하거나 어리석을 수도 있습니다. 누구라도 그 의견들을 지지할 수도 있고, 배척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대가 내게 들은 가르침은 의견이 아닙니다. 그 가르침의 목표는 지식을 열망하는 자에게 세상을 설명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의 목표는 다른 것입니다, 바로 번뇌로부터의 해탈입니다.

 

사랑은 구걸할 수도, 매수할 수도, 선물로 받을 수도, 골목에서 발견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빼앗을 수는 없습니다.

 

사실상 다들 그렇게 처신하는 것 같습니다. 누구나 받고, 누구나 줍니다. 그것이 인생입니다.

 

나는 사고할 수 있습니다. 나는 기다릴 수 있습니다. 나는 단식할 수 있습니다.
그게 전부입니까?
그게 전부입니다.

 

그는 초조함을 모릅니다. 그는 궁핍을 모릅니다. 그는 오랫동안 굶주림에 시달릴지라도 그 일을 웃어넘길 수 있습니다.

 

순례자의 태도를 가진 채로 상인의 일을 돕던 초반 싯다르타는 정말 성자처럼 보인다.

구걸을 하는 사람이나 자신을 속이려고 하는 장사치들에게 모두 공평한 호기심과 태도를 지니고 상대하는 모습이나,

손해와 이익에 모두 초연한 모습,

의미 없는 걸음이 될 뻔했던 거래 여정 또한 조급히 귀환하는 대신 여행으로 치환함으로써 추억으로 만드는 신념 있는 모습,

등등이 담긴 이 부분에서

싯다르타라는 인물에 대해 제일 큰 매력을 느꼈던 것 같다.

속세에 살고 있어서 그런 듯..

 

옴!

옴!

완성!

옴 :  불교의 진언(眞言) 가운데 가장 위대한 것으로 여겨지는 신성한 음절/ 불교에서는 옴을 태초의 소리‚ 우주의 모든 진동을 응축한 기본음으로 보고 부처에게 귀의하는 자세를 상징

딱 떨어지는 의미의 단어가 아니라서 아리송했는데

작품 중간에 나오는 언어로 표현되는 모든 것들은 한쪽에 치우쳐서 단일성을 가지지 못한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그렇타 딱 떨어지는 진리를 찾을 수는 없는 법

나의 길은 또 나를 어디로 끌고 갈 것인가?

 

모두 스스로 맛보는 것은 좋은 일이야. 속세의 쾌락과 부가 좋은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나는 이미 어렸을 적에 배웠다, 오래전에 알았지만 지금에야 비로소 그것을 제대로 체험했다. 그리고 나는 이제 알고 있다, 그것을 단지 기억으로만 아는 것이 아니라 눈으로, 마음으로, 위로 알고 있다, 내가 그것을 알고 있다는 것은 참 다행이다!

게으르게 산 것에 대한 위안,,

한 인간 때문에 고통스러워하고, 한 인간을 사랑하면서, 사랑 때문에 바보가 되는 소인배가 되어 버렸다.

 

단순하고 어리석지만 무섭도록 강렬하고 강한 생명력을 지닌 욕구와 충동이 싯다르타에게는 이제 더 이상 하찮은 것이 아니었다. 그는 그런 것들 때문에 사람들이 살아가고 있음을 알았고, 그런 것들 때문에 사람들이 무수히 많은 것을 성취하고, 여행을 하고, 전쟁을 일으키고, 무한한 것에 시달리고, 무한한 것을 견뎌 낸다는 것을 알았다. 그는 그런 것 때문에 그들을 사랑할 수 있게 되었다.

헤세의 작품에는 비슷하게 나타나는 양상이 있는 것 같다

데미안에서 나온 선과 악의 통합, 모든 것에 대한 중립성, 통합 등의 사상이 느껴진다.

 

등장인물 방면에서도

한스 기벤라트에게는 헤르만이

싱클레어에게는 데미안이 

그리고 싯다르타에게는 고빈다가

 

에밀 싱클레어에게는 이바/베아트리체

그리고 싯다르타에게는 카말라가

 

우정의 대상이랑 사랑의 대상?

둘의 경계가 모호한 것 같기도 하고

 

굳이 나누지 말고 데미안이 싱클레어의 어두운 내면이었던 것처럼 다른 뜻이 내포되어 있을 수도 있겠다

불교의 교리나 문화를 잘 몰라서 이해하지 못하는 부분이 좀 있는 것도 같다 

 

불교에 관련된 책은 처음 읽어봤는데 수양과 단식과 윤회 등등 익숙하지 않은 부분도 있지만 종교가 주는 중용과 사랑 등의 교훈은 유사하게 느껴진다.


다음은 드 보통 씨를 정복하러 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