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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Book/독서록

📕소년이 온다 - 한강 (24/11)

by 정람지 2024. 11. 26.

5·18 민주화 운동

1980년 5월 18일부터 27일까지 대한민국 광주에서 발생한 민주화 운동

전두환을 중심으로 한 신군부의 권력 장악 시도와 이에 대한 시민들의 저항으로 촉발

 

원인

1. 정치적 배경

- 1979년 10월, 박정희 대통령이 피살되며 유신 체제가 붕괴.

- 최규하 대통령의 과도 정부가 들어섰지만, 군부 내 전두환, 노태우 등 신군부 세력이 실권을 장악.

- 신군부는 ‘12·12 군사 반란’을 통해 군부를 장악하고 실질적인 권력을 행사.

2. 사회적 불만

- 유신 체제 하의 억압적 통치로 인해 시민들 사이에 민주화 요구가 팽배.

- 학생과 시민들의 민주화 요구가 전국적으로 확산되며 대규모 시위 발생.

3. 계엄령 확대

- 신군부는 1980년 5월 17일, 전국에 계엄령을 확대하고 정치 활동과 언론을 통제.

- 대학 폐쇄와 학생 활동 금지 등으로 민주화 요구를 억압하며 긴장이 고조.

 

전개

1. 시위의 시작 (5월 18일)

- 광주 전남대학교 학생들이 계엄 해제와 민주화를 요구하며 시위 시작.

- 신군부는 공수부대를 투입하여 강경 진압.

2. 시위 확산

- 공수부대의 폭력적인 진압으로 시민들의 분노가 폭발.

-  일반 시민들도 시위에 동참하며 규모가 확산.

3. 계엄군의 폭력

- 계엄군은 무차별적인 폭력, 총기 사용, 시민 체포와 고문을 강행.

- 특히 5월 21일, 전남도청 앞에서의 집단 발포로 많은 시민이 사망.

4. 시민 자치

- 계엄군이 도심에서 물러난 후 시민들은 자발적으로 조직을 결성하여 질서를 유지.

- 언론 통제로 외부와 단절된 상태에서 시민들은 내부적으로 결속.

5. 진압과 종결 (5월 27일)

- 계엄군이 전남도청을 재진입하며 무력으로 시위를 진압.

- 다수의 사상자 발생과 함께 운동 종료.

 

결과

1. 직접적인 피해

- 수백 명의 사망자와 부상자 발생(공식 사망자는 약 200명, 실제 사망자는 더 많을 것으로 추정).

- 많은 시민이 체포, 구금, 고문.

2. 국내외 반응

- 당시 정부는 사건을 “폭도 진압”으로 규정하고 왜곡된 정보를 유포.

- 국제적으로는 신군부의 인권 탄압에 대한 비판 여론이 확산.

3. 장기적 영향

- 민주화 운동의 상징적 사건으로 자리잡음.

- 1987년 6월 민주항쟁의 밑거름이 됨.

- 1997년, 5·18 민주화 운동은 국가기념일로 지정.

- 관련 인물들에 대한 재판과 보상 등으로 역사적 재평가 진행.

츅츅,,,,

 

군인들이 죽인 사람들에게 왜 애국가를 불러주는 걸까. 왜 태극기로 관을 감싸는 걸까. 마치 나라가 그들을 죽인 게 아니라는 듯이.
흐느낌 사이로 돌림노래처럼 애국가가 불려지는 동안, 악절과 악절들이 부딪치며 생기는 미묘한 불협화음에 너는 숨죽여 귀를 기울였다.
그렇게 하면 나라란 게 무엇인지 이해할 수 있을 것처럼.

 

나라가 이들을 죽였다는 걸 은유적으로 나타내는 장면인 것 같은데 

나는 뭔가 소년의 통찰력에 감탄을,,

나라면 흑흑하다가 태극기 감싸래서 감싸고 같이 불렀을 것 같은데

남들이 다 하는 것에 대해 의문을 가지고 비판적인 생각을 할 수 있도록 세상의 정세를 잘 읽어야겠다..

 

당신이 죽은 뒤 장례식을 치르지 못해, 내 삶이 장례식이 되었습니다.

흑낑낑

 

그러니까 인간은, 근본적으로 잔인한 존재인 것입니까? 우리들은 단지 보편적인 경험을 한 것뿐입니까? 우리는 존엄하다는 착각 속에 살고 있을 뿐 언제든 아무거도 아닌 것, 벌레, 짐승, 고름과 진물의 덩어리로 변할 수 있는 겁니까? 굴욕당하고 훼손되고 살해되는 것, 그것이 역사 속에서 증명된 인간의 본질입니까?

다시 악의 평범성을 체감하게 한 고문 장면들,,

악해지지 않으려면 공부하고,,고민하고,,,

 

양심.
그래요 양심.
세상에서 제일 무서운 게 그겁니다.
군인들이 쏘아 죽인 사람들의 시신을 리어카에 실어 앞세우고 수십만의 사람들과 함께 총구 앞에 섰던 날, 느닷없이 발견한 내 안의 깨끗한 무엇에 나는 놀랐습니다. 더 이상 두렵지 않다는 느낌, 지금 죽어도 좋다는 느낌, 수십만 사람들의 피가 모여 거대한 혈관을 이룬 것 같았던 생생한 느낌을 기억합니다. 그 혈관에 흐르며 고동치는, 세상에서 가장 거대하고 숭고한 심장의 맥박을 나는 느꼈습니다. 감히 내가 그것의 일부가 되었다고 느꼈습니다.
선생은 압니까. 자신이 완전하게 깨끗하고 선한 존재가 되었다는 느낌이 얼마나 강렬한 것인지. 양심이라는 눈부시게 깨끗한 보석이 내 안에 들어와 박힌 것 같은 순간의 광휘를.

선하거나 도덕적인 건 뭘까,,
전두환과 신군부도, 히틀러나 나치도 어떤 목표와 신념이 있고 그것이 옳다고 확신했기 때문에 거기까지 가셨겠지

아니요, 쏘지 않았습니다.
누구도 죽이지 않았습니다.
방아쇠를 당기면 사람이 죽는다는 걸 알면서 그렇게 할 수가 없었습니다, 우린 쏠 수 없는 총을 나눠 가진 아이들이었던 겁니다.

완벽하게 선하거나 완벽하게 악할 수는 없지만

20.pdf
0.13MB

 

 

 

적어도 세계인권선언에 위배되지 않는 일을 해야 하는 건 명확하다고 생각한다

특별히 잔인한 군인들이 있었던 것처럼, 특별히 소극적인 군인들이 있었다.

어딘가 흡사한 태도가 도청에 남은 시민군들에게도 있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총을 받기만 했을 뿐 쏘지 못했다. 패배할 것을 알면서 왜 남았느냐는 질문에 살아남은 증언자들은 모두 비슷하게 대답했다.
모르겠습니다. 그냥 그래야 할 것 같습니다.
그들이 희생자라고 생각했던 것은 내 오해였다. 그들은 희생자가 되기를 원하지 않았기 때문에 거기 남았다.
...
전생의 것 같은 존엄을 기억해내는 순간. 
그 순간을 짓부수며 학살이 온다, 고문이 온다, 강제진압이 온다, 밀어붙인다, 짓이긴다, 쓸어버린다, 
하지만 지금, 눈을 뜨고 있는 한, 응시하고 있는 한 끝끝내 우리는....

이제 당신이 나를 이끌고 가기를 바랍니다. 당신이 나를 밝은 쪽으로 , 빛이 비치는 쪽으로, 꽃이 핀 쪽으로 끌고 가기를 바랍니다.

 

극한의 상황에서도 본능적으로 생명을 존중했던 사람들에게 경의를 표한다.

 

마지막 문장이,,,에필로그 마지막 문장에 대한 연결인 것 같아서

눙물을

 

어떤 기억은 아물지 않습니다. 시간이 흘러 기억이 흐릿해지는 게 아니라, 오히려 그 기억만 남기고 다른 모든 것이 서서히 마모됩니다.

 

평범한 평화에 감사하고,,

나는 싸우고 있습니다. 날마다 혼자서 싸웁니다. 살아남았다는, 아직도 살아 있다는 치욕과 싸웁니다. 내가 인간이라는 사실과 싸웁니다. 오직 죽음만이 그 사실로부터 앞당겨 벗어날 유일한 길이란 생각과 싸웁니다. 선생은, 나와 같은 인간인 선생은 어떤 대답을 나에게 해주실 수 있습니까?

살아가는 평화로운 시대가 어떤 희생 아래에서 이뤄졌는지를 잊지 않아야 할 것이다


+

6월 민주 항쟁

1987년 6월에 대한민국 전역에서 발생한 민주화 운동

전두환 군사 독재 정권에 맞서 국민들이 대통령 직선제와 민주화를 요구하며 대규모 시위를 전개한 사건

민주화의 물꼬를 트며 대통령 직선제 개헌을 이루는 계기

 

배경

1. 정치적 억압

- 전두환 정부는 1980년 5·18 민주화 운동을 폭력적으로 진압하고 군사 독재 체제를 강화.

- 국민의 민주화 요구를 탄압하고, 간접 선거 방식의 대통령제를 고수.

2. 경제적 격차와 사회적 긴장

- 1980년대 한국 경제는 고도성장을 이루었지만, 빈부 격차와 사회적 불평등이 심화.

- 억압적 정치 체제와 맞물려 국민들의 불만 고조.

3. 박종철 고문 치사 사건 (1987년 1월)

- 서울대생 박종철이 경찰의 고문으로 사망한 사건이 언론에 보도되며 정권의 비인권적 행태가 폭로됨.

- 국민들의 분노가 폭발하며 민주화 요구가 거세짐.

4. 이한열 사망 사건 (1987년 6월)

- 연세대생 이한열이 시위 도중 최루탄에 맞아 사망(6월 9일).

- 이 사건은 항쟁의 도화선이 됨.

 

과정

1. 국민운동 본격화

- 1987년 6월 10일, 전국적으로 민주화 운동이 본격화.

- ‘민주헌법 쟁취 국민운동본부’가 주도하며 시위 확산.

- 직선제 개헌과 전두환 퇴진을 요구.

2. 시민들의 대규모 참여

- 학생, 노동자, 종교인, 일반 시민 등 전 계층이 참여.

- 서울, 부산, 대구, 광주 등 주요 도시에서 대규모 집회와 시위.

3. 정부의 강경 진압

- 정부는 최루탄과 경찰력을 동원해 시위 진압 시도.

- 그러나 국민적 저항과 국제적 비난으로 강경 진압이 한계에 부딪힘.

4. 6·29 선언

- 6월 29일, 여당 대표 노태우가 대통령 직선제 수용과 민주화를 약속하는 6·29 선언 발표.

- 군사 정권이 국민적 요구에 굴복하며 항쟁 종결.

 

결과

1. 직선제 개헌

- 대통령 간접 선거제를 폐지하고 국민이 직접 선거로 대통령을 뽑는 9차 개헌(1987년 10월)이 이루어짐.

- 1987년 12월 대선에서 노태우가 당선되며 새 헌법 하 첫 선거 시행.

2. 민주화의 진전

- 이후 군사 독재는 막을 내리고 민주주의가 자리 잡기 시작.

- 정치적 자유와 국민의 권리 신장이 이루어짐.

3. 한국 민주주의의 전환점

- 6월 민주 항쟁은 대한민국 현대사에서 민주주의가 본격적으로 뿌리내리는 계기가 됨.

- 이후 시민사회가 더욱 활성화되며 한국 정치에 지속적인 영향을 미침.


초록노랑 컨셉 방 유지하고 싶어서

초록노랑 책만 읽는 나.

뿌듯.

초록노랑 책커버를 살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