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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Book/독서록

📙페스트 - 알베르 카뮈(23.7.2-3주차)

by 정람지 2023. 7. 28.

 

📙등장인물📙

베르나르 리외(Bernard Rieux)

- 주인공(서술자)이자 의사/ 아픈 아내가 있으며 책 말미에 사망 소식을 듣게 됨.

 

장 타루(Jean Tarrou)

-  보건대 참여자(봉사자) / 작품 말미 페스트가 물러나는 시점 페스트에 걸려서 사망

 

레몽 랑베르(Raymond Rambert)

- 파리에서 온 신문기자  / 알제리 오랑에서 탈출하기 위해 노력했지만 성공 직전 마음을 바꿔 보건대에서 일한다. 결말에서 연인과 재회.

 

조제프 그랑(Joseph Grand)

- 말단 공무원 / 잔이라는 아내가 있었지만 아내가 그를 떠나서 혼자 살게 된 사람. 

 

판느루(Paneloux)

- 예수회 신부 / 흑사병을 타락한 인류에 대한 하느님의 징벌이라고 주장 / 보건대에 참여해서 활동하다 어린아이가 죽는 것을 보고 본인도 고뇌를 느낌 / 어떠한 신념에 의해 의사를 부르지 않고 병명 미상의 병에 의해 죽음.

 

코타르(Cottard)

- 흑사병으로 야기된 혼란한 상황을 유일하게 좋아했던 범죄자 / 페스트 종료 후  무차별 총격 사건으로 경찰에게 체포


📙 문장들 📙

 <시간을 낭비하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답: 시간을 그 길이 전체로 경험할 것.
방법 : 치과 대기실의 불편한 의자에 앉아 하루를 보낼 것. 일요일 오후를 자기 집 발코니에서 보낼 것, 모르는 언어로 진행되는 강의를 들을 것...

타루의 기록 중 하나인데 신기한 관점이라고 생각했다. ㅎㅎ

 

신문은 거리에서 일어나는 일에만 관심을 기울였다.

매체에서 집중하지 않는 중요한 일들이 많은 것 같다. 사람들과 언론의 관심이 사건의 경중과는 좀 다르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사실 재앙은 모두가 다 겪는 공동의 문제이지만, 그것이 자기에게 닥치면 여간해서는 믿지 못하게 된다. 

정말인 것 같다. 뉴스에서 많은 이들이 사고와 병으로 사망하지만 그것이 자신에게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안일하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전쟁이 일어나면 사람들은 "오래 안 갈 거야. 너무 바보 같잖아." 라고 한다. 하기야 전쟁이 바보 같다는 것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 그렇다고 해서 전쟁이 금방 끝나는 것은 아니다. 
사망자는 죽은 모습을 눈으로 직접 보았을 떄만 실감이 나는 법이어서, 오랜 역사에 걸쳐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1억 명의 죽음이란 상상 속에서는 한줄기 연기에 불과할 뿐이다.

멀지 않게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이를 확인할 수 있다. 이렇게 길게 이어지고 관심이 금방 사그라들 줄은 몰랐다.

 

완벽할 정도로 갑작스러운 데다 언제 끝날지 예견할 수도 없는 그 이별에 망연자실한 때, 우리는 그토록 가까이 있었는데 어느새 그토록 멀어진 존재, 그리고 이제 우리의 삶 하루하루를 다 차지해버린 존재에 대한 추억에 저항하지 못했다.
리유는 더 이상 동정심에 맞서 싸울 필요가 없다는 것을 꺠달았다. 동정심이 아무 소용이 없게 되면 동정하는 것도 피곤해지는 법이다.

무력함을 깨닫는 것은 사람을 여러모로 닳게 만든다.

 

만약 전능한 신의 존재를  믿었다면 그런 수고는 신에게 맡기고 사람을 치료하는 일을 그만둘 거라고 말했다. 그러나 자신을 완전히 포기하는 사람은 없기 때문에 이 세상 누구도, 심지어 신을 믿는다고 생각하는 파눌로 신부까지도 그런 전능한 신을 믿지는 않는다고 말했다. 그리고 적어도 그 점에서 리유 자신도 있는 그대로의 창조된 세계를 거부하고 투쟁함으로써 진리의 길을 걷고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파눌루 신부를 통해 고통과 재앙 속에서의 종교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다. 종교는 어려모로 판단하기 어렵다.

 

하지만 어떤 행동이 아무리 휼륭해도 그것을 지나치게 중요시하다 보면 결국은 간접적으로나마 악에 강력한 찬사를 바치게 된다고 믿는다. 그런 휼륭한 행동들이 그토록 큰 가치를 가진다면 그런 행동들 자체가 드물기 때문이며, 악의와 무관심이 인간 행동의 더 흔한 원동력이기 때문이라는 점만을 전제로 하기 떄문이다.

! 정말 새로운 생각이다

 

사람은 다 그래요. 타루가 말했다. 사람들은 단지 그런 기회가 없는 거라고요.
그가 미소를 지으며 리유를 향해 눈을 깜빡였다.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 평생 내가 할 일이고요"

타루는 매력적

어떠한 신념에 굳건한 사람들은 그 신념 때문에 자가당착에 빠질 때가 있는 것 같다. 어떤 희생이나 대가를 치뤘을 때 어쩔 수 없이 더욱 신념에 매달리게 될 수밖에 없고 이때 누군가의 기회 제공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파눌루 신부나, 얼마 전에 본 '에드 아스트라'의 주인공 아버지도 그렇다. 타루나 주인공이 기회 제공을 해 주었지만, 둘 다 결말은 끝까지 자신의 신념을 버리지 못하고 죽었다. 신념도 중요하지만 자기 자신을 속이지 않고 진실을 받아들일 수 있는 시각도 중요하다.

 

그런데 나는 관념 떄문에 죽는 사람들은 지긋지긋해요. 나는 영웅주의를 믿지 않아요. 내가 아는 한 영웅주의는 어렵지도 않고, 또 영웅주의가 사람을 죽일 수도 있다는 것을 배웠어요. 내가 관심 있는 건, 사는 것 그리고 사랑하는 것을 위해 죽는 것이예요.

 랑베르도 매력적

장르가 재앙이기 때문에 초반의 랑베르가 비윤리적인 사람처럼 보일 수도 있지만, 랑베르와 그의 연인의 로맨스 이야기였더라면 그의 탈출 시도는 당연하다. 랑베르가 살아서 재회했기에 망정이지 만약 탈출 직전에 보건대에 재합류해서 일하다 죽었더라면 그의 연인에게는, 또는 그 이야기의 서사를 아는 독자에게는 쓰레기다.

사람에게는 여러 이야기와 상황, 인물이 있고 각자의 사정이 있다는 점을 유의해야 할 것 같다.

 

다른 지역 주민들은 힘든 순간에도 자기들보다 자유롭지 못한 사람들이 있다는 데 위안을 얻었다.

[불안]에서와 마찬가지지만 이것은 사회적 동물인 인간이 절대 버릴 수 없는 추악한 면모다. 어떻게 극복할 수 있을까?

 

사실 재앙만큼 보잘것없는 것은 없고, 큰 불행은 오래 지속되기 떄문에 단조롭게 느껴진다.
그러나 사실 그들은 이미 잠들어 있었고, 그 기간 전체가 하나의 기나긴 잠에 불과했다. 도시는 눈뜬 채 잠을 자는 사람들로 가득 차 있었는데,
... 
재앙에 맞서 싸우는 사람들은 차츰 탈진 상태에 빠져들었는데, 탈진 상태가 초래하는 가장 큰 위험은 외부의 사건이나 타인의 정서에 대한 무심함이 아니라 될 대로 되라는 식으로 내버려두는 어떤 태만함이었다.

"사랑은 고난이 아니라 권태로 인해 무너진다"

ㅜ괜히 판타지나 여러 작품에서 고독과 긴 시간의 단절이 최고의 재앙이 아니다. (ex 버튼누르고 돈 받는 대신 몇만년 홀로 떨어지기 만화)

 

타루에게서 발견할 수 있는 가장 놀라운 점은, 그는 아무리 힘들어도 항상 호의가 넘치고 친절하다는 것이다.

타루는 매력적

 

"그런데 왜 내가 떠나려는 걸 막지 않으세요? 막을 수도 있잖아요." 리유는 으레 그러듯이 고개를 끄덕이더니, 그것은 랑베르 자신의 문제이고 랑베르는 행복을 선택한 것이며 자신은 그에게 반대할 논거가 없다고 말했다. 자신의 느끼기에 그는 이런 문제에 대해 무엇이 옳고 그른지를 판단할 능력이 없었다.
"그러면서 왜 서두르라고 하세요?"
이번에는 리유가 미소를 지었다.
어쩌면 나 역시 행복을 위해 뭔가 하고 싶기 때문이겠죠"

리유도 매력적

"저는 떠나지 않고 여러분과 함께 남고 싶습니다."
...
리유가 몸을 일으키며 확고한 목소리로, 그것은 어리석은 짓이고 행복을 택하는 건 부끄러운 일이 아니라고 말했ㄲ다.
"맞아요. 하지만 혼자서만 행복한 것은 수치스러울 수 있어요"
그때까지 한마디도 하지 않던 타루는 그들 쪽을 쳐다보지도 않고, 만약 랑베르가 다른 사람의 불행을 함께 나눌 생각이라면 행복을 위한 시간은 더 이상 얻지 못할 거락 지적했다. 선택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행복해지기 위해서는 어러 가지의 어려움이 있지만 그 중에서도 정확히 어떤 길로 가야 행복할 수 있는지 아는 것의 어려움도 있는 것 같다.

 

그러나 악을 구분하는 데는 어려움이 따른다. 예를 들어 명백히 필요한 악이 있고 또 명백히 필요 없는 악이 있다. 지옥에 빠진 돈 후안과 어린아이의 죽음이 그것으로, 방탕한 사람이 벼락을 맞는 것은 당연하지만 어린아이가 고통을 겪는 것은 이해할 수 없기 떄문이다.

이 세상에 이해할 수 없는 악이 있기 때문에 신은 선하지 않거나, 전능하지 않거나, 전지하지 않다고 한다.

선하고 전능하면, 전지하지 않기에 악이 있고,

선하고 전지하면, 전능하지 않기에 악이 있고,

전지하고 전능하면, 선하지 않기에 악이 있다.

아니면 뭔가 다른 게 더 있을지도??

 

온 마음을 기울여 페스트와 싸운다고 생각하며 살아온 그 오랜 세월 동안 항상 페스트 환자였다는 사실을 그떄 깨달았어요. 간접적으로나마 수천 명의 죽음에 동의했다는 것. 죽음을 초래할 수밖에 없는 행위나 원칙을 선이라고 생각하고 그런 죽음을 부추기기까지 했다는 걸 알게 된 거죠.

타루의 생각인데..아직 완벽하게 이해하지는 못했다. 

평화에 도달하기 위해 어떤 길을 걸어야 할지 생각해보았느냐고 물었다.
"그럼요, 공감의 길이지요."

나도 타루처럼 사색하고..노트쓰고.. 해야지

어렵

타루는 인간이 인간을 단죄할 권리를 거부했다. 그러나 그는 남을 단죄하지 않을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으며, 심지어 희생자도 떄로는 사형집행인이 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분열과 모순 속에서 살았고 희망이라곤 전혀 경험하지 못했던 것이다. 그가 성스로움을 추구하고 인간에 대한 봉사에서 마음의 평화를 찾으려고 한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이었을까?

죽지 말지 그랬어ㅜ

 

그들을 영영 잃어버렸다고 생각했었던 사람을 지체 없이 되찾았다. 그들은 적어도 당분간은 행복할 것이다. 이제 그들은 인간이 언제나 원할 수 있고 또 가끔 얻을 수 있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애정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서술자를 마지막에 밝혀서 계속 이 소설의 시점이 뭔지 헷갈렸다.

의사 리유는 침묵하는 사람이 되지 않기 위해, 페스트에 걸렸던 사람들에 대해 우호적으로 증언하기 위해, 적어도 그들에게 가해진 불의와 폭력에 대한 기억을 남기기 위해, 재앙 중에 배운 것 - 인간에게는 경멸해야 할 것보다 찬양해야 할 것이 더 많다는 것-만이라도 말하기 위해 직듬 여기서 끊맺으려고 하는 이야기를 글로 쓰기로 결심했다.
“페스트균은 결코 죽거나 소멸하지 않으며, 그 균은 수십년간 가구나 옷가지들 속에서 잠자고 있을 수 있고, (…) 아마 언젠가는 인간들에게 불행과 교훈을 가져다주기 위해서 또다시 저 쥐들을 흔들어 깨워가지고 어느 행복한 도시로 그것들을 몰아넣어 거기서 죽게 할 날이 온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아마 카뮈는 나치즘 같은 사상 등에 이를 빗대어 말한 것 같지만 놀랍게도 코로나가 우리를 방문했다.


📙 정리 📙

페스트라는 비극과 대결하는 인간의 모습을 다룬 작품이다.

" 나치주의에 반대하는 유럽 레지스탕스의 투쟁 " 이라고 카뮈가 이 책에 대해 설명했다고 한다.

진정한 인간이 되고자 했던 평범한 인간들의 드라마  가 페스트 소설에 대한 한 줄 정리다.


📙 알베르 카뮈 📙

카뮈의 작품 계획에는 1단계 부정 -> 2단계 긍정 -> 3단계 사랑 이라는 단계가 있었다고 한다.

 

1단계 부정의 작품은 [이방인] 이다. 

이방인은 부조리한 상황에 놓인 개인에 대한 이야기로,

삶에 대한 열정이 있는 상태에서의 피할 수 없는 최대의 부조리, 즉 죽음과의 대면 속에서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에 대한 물음을 던진다.

Q. 언젠가 반드시 죽는다면, 우리는 어떤 태도로 살아야 하는가?

 

그에 대한 답은 2단계 긍정의 작품 [페스트]에서 등장한다.

카뮈는 주인공 리유의 성실성과 연대에 집중한다.

'자연스러운 것, 그것은 병균입니다. 그 외의 것들, 건강, 청렴, 순결성 등은 결코 멈춰서는 안 될 의지의 소산입니다"

A. 공동체와 연대하고, 자신의 맡은 바 역할을 다할 것.

 

3단계 사랑의 소설은 카뮈의 자동차 사고로 세상에 나오지 못했다.

난 열린 결말을 정말 싫어하는데..

카뮈의 마지막 메세지를 꼭 알고 싶은데 정말 아쉽다.

 

 

짱!

오케스트라 연주 부분과

타루의 어린 시절 이야기

 

는 나중에 다시 한번 더 읽고 이해해보겠다.